리뷰해달라고 받은 책이 쌓여있는데 일단 이건 읽고 봐야겠다. 싶어서 냅다 펴들었다.
작년말쯤 부터였나, 드라마 <달콤한 나의 도시>가 끝나갈 무렵 쯤부터였나, 드라마를 본 것도 아니지만 드라마 얘기를 옆에서 듣고는 왠지 아 그 드라마, 어쩐지 원작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벼르고 있었던 것과, 아해님 블로그에서 표지가 이쁜 책으로 언급된 것으로 관심을 샤샤샥 끌었던 것이 이 책을 사들게 된 계기들이 아니었나 싶다. 아. 옆방 아가씨도 한 추천 했었지.
그래서는 지난 달에 알라딘 중고샵에서 구해다가 들여놓고 보고 있었던 것. 그나저나 표지는 정말 예쁘게도 그렸다. 하지만 실제 소설의 분위기는 표지처럼 도시 위를 떠다니는 샤방샤방한 소녀랑은 전혀 매칭되지 않는다. ㅋ 저 그림 아래쪽의 칙칙한 도시속에 파묻혀 있는 나이 서른의 OL 그런 쪽이라는거... -0-
그래서 소설은 어땠냐면 말이지.
#1.
<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>라는 인문쪽 책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. 그 책과 이 소설은 베이스라인을 동일하게 놓고 봐도 되겠다. 서른이라는, 왠지 뭔가 잔뜩 해놓은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뭔가 제대로 되어있는 것 하나 없는 그 나이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의 흔들림과 마음의 불안함을 어루만져주고 등을 토닥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. 아마 작가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어렵고 고민도 많은 시기이지만 "괜찮아 잘 될거야~" 할 수 있는 나이라는 식의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을까.
#2.
왠지 작가, 아니 주인공의 나레이션의 글투가 입에 쩍쩍 붙는다. 내가 아주아주 좋아하는 식의 표현방법이랄까. 빈정대는 듯 하면서 또 자조적인 내지는 가학&자학적인 말투같은거 말이다. -_- 마침 주인공의 캐릭터가 그런 류의 화법이 잘 어울리는 캐릭터인 것도 플러스 점수.
#3.
내 나이가 스물아홉인 것도 플러스. (어쩌라고!)
네 손으로 선택한 주제에 - 더 원색적으로 말하자면 네 눈깔 네가 찌른 주제에 - 왜 불만에 차 사사건건 트집이냐는 압박이 무서워서라도 나는 꼼짝없이 입 다물고 찌그러져 살아야 했을 것이다.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래왔다. 선택이 자유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항상, 뭔가를 골라야 하는 상황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 진땀을 흘려대곤 했다.
25세의 여자를 부러워하는 건 탱탱한 피부 때문이 아니다. 내 질투의 이유는, 그녀의 무모한 용기가 수틀리면 쉽게 손 털고 첨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자의 자신감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.
그러나 어쩌면 좋으랴. 나이 들수록 점점,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라도 내 깊은 속내를 쉬이 털어놓을 수 없게 되는 것을. 달팽이가 자꾸만 동그랗게 몸을 움츠리는 것이 달팽이의 잘못은 아니지 않는가.혓바닥을 놀려 진심의 조각을 입 밖으로 밀어내는 순간, 진심은 진심이 아닌 것으로 변한다. 누구의 탓도 아니다. 다만 의외의 곳에서 그 책임 없는 말들의 유령과 조우했을 때 받게 되는 고약한 느낌에 대하여 더듬더듬 기억할 수 있을 따름이다.
그동안 몇 차례의 실패한 연애들을 겪었다. 나의 옛 연인들은 제각각 다양한 결격 사유들을 치질처럼 숨기고 있었다. 그런데, 나와 헤어진 뒤 그들 대부분이 결혼하여 멀쩡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. 내게는 치명적이었던 그 남자들의 문제를, 다른 여자들은 둥글게 감싸 안고 살아가고 있는 거다. 나의 연애들이 무위로 돌아간 것은 그 남자들의 사정 때문이 아니라 나의 사정 때문임을 이제는 알겠다.
#4.
그래서 이제 어느새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 고민하고 갈등 때리고, 또는 하고 싶은 일과 먹고 사는 일 사이에서 치여 살아가는 우리 나이대의 영혼들에게 이 소설은 그런 고민같은거 누구나 하고 있는 거라고, 나만 헤메고 있는 건 아니라고 토닥토닥해주기도 한다. 그리고 여기저기 매달려 보지만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과 결과와 책임은 다 내가 가지고 가는 거라고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기도 하고.
결말에서 딱히 어떤 직장이나 남자를 선택하는 해답, 또는 예시를 제시해 주는 건 아니지만,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없다는 걸 작가는 물론이고 독자도 잘 알고 있기에 그 정도선의 결말은 어쩌면 뒷맛이 오히려 개운하다.
아무튼 벌써 스물아홉이여. (먼산)
09. 4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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카루 2009/04/08 12:03 댓글주소 수정/삭제 댓글쓰기
그래도 아직은 스물아홉이지!~
ㅋㅋㅋ 자네 그런 말 할 때가 아니라네 orz
베리배드씽 2009/04/08 15:19 댓글주소 수정/삭제 댓글쓰기
냉소적이고 발칙하기까지했던 정이현의 단편을 생각하면 이 소설이 다소 아쉽기도 해요.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치며 공감하게 되는 행간들이 여럿 눈에 띄죠. 하루님도 괜찮게 읽으신 걸 보니 남성들에게도 어느 정도 통하는 부분이 있나봐요. 그건 미처 생각치 못했는데 말이죠 :)
저는 이 작가분의 다른 작품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죠. 이 책의 특징은 철저하게 서른 즈음의 인생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제공한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. ㅎ 다른 작품도 한번 찾아보려구요.
참. 제 평가를 가지고 남성들에게 통하는 부분에 대해 논하시는 건 조금 곤란할 것 같아요. 남자언니들은 언니들 정서에도 익숙하거든요? ㅋㅋ
The Blue. 2009/04/10 00:46 댓글주소 수정/삭제 댓글쓰기
아... 저랑 동갑이시군요. ㅠ_ㅠ 반가우면서도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이유는 뭘까요?
서른살의 심리학은 정말 재미있게 본 책이랍니다.
이책도 마음속에 스택해둬야겠습니다.
1순위 편지,2순위 달콤한 나의도시
보고싶은 책들이 쌓여만 가네요.
아하하 ^^ 동갑이셨군요!
반갑다 친구야! (응? 이건 좀 아니죠 ㅋㅋ)
아무튼 1순위 편지는 <츠지 히토나리의 편지>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. 그 책도 참 괜찮죠. 전 츠지 히토나리의 팬이에요 ㅎㅎ
flounder 2009/04/14 17:44 댓글주소 수정/삭제 댓글쓰기
저도 이 책 재밌게 봤지요. 한국 가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사왔다는.. 거기다 드라마도 열심히 봤더라는..; 드라마는 줄거리는 거의 같지만 분위기가 많이 다르고 결정적으로 결말이 좀 다르죠. 소설은 분위기 자체가 요즘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넘어가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죠. 화자가 여자여서 전 더 공감했다는...
그런데 전 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요즘 마흔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서 그런지.. 서른이 된다는 것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고 마흔이 될 때까지는 뭔가. 뭔가.. 하는 불안이 벌써 엄습한다는 거죠.;;
ㅎㅎㅎ 한국 가는 사람에게 구해달라 할만큼 주목하던 소설이었구랴 :) 딱 20대에서 30대 이행기에 있으면서 적당히 꿈과 직장과 연애와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들을 모아다가 만든 작품쯤이라고 보면 될 듯.
근데 유경냥은 결혼했잖소! ㅋㅋㅋ